식단

이지수의 러닝메이트#7. 채식파 영조 vs 육식파 세종

2022년 6월 24일


📌 [이지수의 러닝메이트]
다노의 대표이면서 건강한 습관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고민하고 시도하는 ‘만년 습관성형 수련자’인 이지수가 격주 한 편의 글을 전합니다. 신체 기능, 식이, 영양, 운동, 정신건강 등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습관’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는 다양한 주제를 다룹니다.

 

요즘 채식에 대한 공부를 하다가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겼습니다. ‘조선 역대 왕들 중에서도 가장 장수했다는 영조의 건강 비결이 채식이라카더라’라는, 언젠가 주워들은 이야기의 실체를 파악해보고 싶어졌어요. 그게 사실이라면 그 시절에도 채식이 장수의 비결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걸까? 아니면 그냥 육식을 싫어해서 채식을 하면서 건강해진 걸까? 그것도 이미 채식이 건강식단이라는 통념이 있었던 걸까? 그랬다면 세종은 고기에 대한 사랑이 어마어마한 육식파였다는데, 조선에서 가장 건강관리가 중요한 ‘왕’의 식단을 만드는 사람들이 너무 무책임했던게 아닐까? 라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거든요.

 

그래서 오늘의 러닝메이트는 우리의 오랜 역사 속에 기록된 육식파 대표주자 세종과 채식파 대표주자 영조의 식습관을 비교해보고, 먹을 것이 넘쳐 누구나 왕처럼 매 끼니를 먹는 요즘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배울 점이 있을지 찾아보는 시간이 되겠습니다. (재밌겠죠?😋)

 

‘식단의 미니멀리즘’ 실천한 영조

 

영조하면 떠오르는 것이 사도세자, 그리고 까칠하고 인정 없는 이미지인데요. 자기 자신조차도 엄격하고 철저하게 관리해서였을까요? 평균 수명이 47세인 조선시대 왕 중에서 가장 장수한(83세) 왕으로도 유명하죠. 영조에 대한 자료에서는 이렇게 영조가 ‘자기관리 끝판왕’이 될 수 있었던 건 채식을 즐기고 건강관리에 신경썼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영조는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대요.

 

“내가 일생토록 얇은 옷과 거친 음식을 먹기 때문에 자전(慈殿·왕의 어머니)께선 늘 염려하셨다. 영빈(영조의 후궁, 사도세자의 생모)도 매양 경계하기를 ‘스스로 먹는 것이 너무 박하니 늙으면 반드시 병이 생길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 병이 없으니 옷과 먹는 것이 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듣자니, 사대부 집에는 초피(貂皮·모피의 한 종류)의 이불과 이름도 모를 반찬이 많다고 한다. 사치가 어찌 이토록 심하게 됐는가?” (영조실록 1750년)

 

그러니까 소식하는 영조를 두고 엄마인 영빈이 너무 적게 먹어서 건강을 해칠까 걱정했는데 정작 영조는 영빈보다, 그리고 주변에서 자신의 건강을 걱정해주던 그 누구보다도 장수했다는 것이 반전(!) 그 비결을 ‘소식'이라고 직접 언급하고 있어요. 그런데 영조는 장수하기 위해서 애써 소식, 채식을 했다기 보다는 식생활 뿐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자체가 검소함과 소박함을 추구하는 ‘미니멀리스트’에 더 가까웠던 것 같아요. 식생활 뿐 아니라 옷차림에서도 검소함을 강조하는 대목에서 알 수 있죠.

 

영조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 중 하나였다는 탕평채. 청포묵에 버섯, 미나리, 숙주 등 채소가 푸짐하게 들어가 다양한 영양소를

채워주는 다노한 추천 메뉴 중 하나이기도 해요.

 

영조 건강식단 대부분을 차지한 ‘거친 음식’

 

이러한 영조의 식습관을 비롯한 미니멀한 라이프스타일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가 정말 궁금해졌어요. 보통 왕들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사치와 풍요가 너무나 당연한 환경 속에서 자연스레 입맛도 맛있고 기름진 음식에 길들여지게 되니까요.

 

그 이유는 영조의 성장과정에서 찾을 수 있었어요. 영조는 숙종과 미천한 신분인 숙빈 최씨 사이에서 태어나 정통 왕세자 교육을 받지 못하고 28세 전까지는 사가에서 생활하며 일반 백성들의 채식 위주 식단을 자연스럽게 갖게 되었다고 해요. 젊은 시절에 서민의 삶을 체험한 덕분에 스스로도 철저히 서민적인 삶을 지향했던 것이 아닐까 해요.

 

영조의 밥상에는 ‘거친 음식'들이 많이 올랐다고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거친 음식이란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입에는 질기지만 장에는 좋은 (=장내 미생물 환경을 부유하게 만들어 주는!) 통곡물과 채소 위주의 반찬을 의미하겠죠? 가난한 백성들의 밥상엔 도정된 백미밥이나 입에서 살살 녹는 부드러운 육식보다는 까끌한 보리밥에 된장국, 나물반찬이나 김치 몇 가지가 다였을테니까요.

 

영조의 어진을 보아도 어떤 식습관을 가졌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어요. 왕세제 시절의 초상화와 중년의 초상화를 비교해보면 수염과 주름살 빼고는 30년 세월동안 체형의 변화가 거의 없어보여요.

 

미디어로 접한 영조의 모습의 이미지 중에 저에게 가장 강렬하게 남은건 영화 <사도>에서 송강호 배우가 연기한 영조였는데,

초상화를 보면 실제로는 이렇게 풍채가 크지 않았던 것 같아요. 송강호 배우가 영조와 비슷한 분위기를 내기 위해 얼굴살을 많이 감량한 것 같죠?

왼쪽은 연잉군 시절 21살 영조의 어진. 오른쪽은 51살의 영조인데,

그림으로만 봐도 얼굴 선이 날렵하고 풍채가 크지 않고 호리호리하지요. 

 

채식 위주의 식단만큼이나 중요한 ‘소식’

 

‘영조=채식주의자’라는 이미지가 워낙 강하다 보니 엄격한 비건이었나? 라고 오해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우유로 만든 타락죽을 좋아했고, 소고기 돼지고기는 먹지 않았지만 전복, 꿩고기, 조기, 메추라기같은 귀하고 값비싼 음식은 이따금 즐겼다고 하니 동물성 식품을 아예 먹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해요. 다만,

 

-소식을 하되 하루 3번 간식과 식사 채식 위주로 항상 꼭꼭 씹어먹었고

-대신들과 회의 중에도 식사시간에는 수라상부터 받았다는 것을 볼 때, (왕들은 바쁜 스케줄로 식사가 불규칙한 것과 대비해)

 

굉장히 규칙적인 식사시간을 준수하며 천천히 먹는 식습관을 가지고 있었고, 어떻게 먹느냐가 무엇을 먹느냐 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세종, ‘고기 없이는 밥이 넘어가지 않아’

 

조선 역사상 가장 큰 업적을 남겼지만 여러 질환에 시달렸고 42세에 단명한 세종대왕은 잘 알려진 육식매니아죠. 그래서 고기집이나 설렁탕집에 ‘이도’라는 상호명이 참 많지요 :)

 

아참, 영조의 이야기에서 하루 3끼를 꼬박꼬박 먹은게 무슨 소식이야? 라고 의구심을 가질 수 있지만 원래 역대 왕들은 하루 5번 수라상을 받았는데, 이걸 3번으로 줄인 것이 영조라고 해요. 즉, 세종은 하루 5끼를 육식 위주의 맛있고 기름진 음식으로 채워 드셨다는 건데, 어떤 음식을 좋아하셨을까요?

 

세종은 정통적인 왕세자 교육을 받으며 어려서부터 기름진 궁중요리와 육식을 접했다고 하니 영조와 마찬가지로 세종도 자라온 환경이 식습관에 준 영향이 컸을 것으로 추측돼요. 성산 부원군 이직 등이 세종의 건강을 염려하는 글을 보면 세종의 식습관이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어요.

 

“졸곡(卒哭·상을 당한지 석달만에 지내는 제사) 뒤에도 오히려 소선(素膳·고기나 생선이 들어있지 않은 반찬)을 하시어 성체(聖體)가 파리하고 검게 되어, 여러 신하들이 바라보고 놀랍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없으며, 또 전하께서 평일에 육식이 아니면 수라를 드시지 못하시는 터인데, 이제 소선한 지도 이미 오래되어 병환이 나실까 염려됩니다.” (‘세종실록’ 세종 4년 9월21일)

 

세종이 고기 없이는 식사를 못했다고 할 정도로 매 끼니 육식을 즐겼던 것 같아요.

 

 

 

위대한 업적, 그 뒤엔 쇠약해져 가던 세종의 건강 상태

 

‘세종실록’에 기록된 세종의 병환 관련된 문건은 50건이나 돼요. 세종이 직접 건강이 좋지 않음을 언급한 대목에서 당시 앓고 있던 질병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나오는데요.

 

“내가 젊어서부터 한쪽 다리가 치우치게 아파서 10여 년에 이르러 조금 나았는데, 또 등에 부종(浮腫)으로 아픈 적이 오래다. 아플 때를 당하면 마음대로 돌아눕지도 못하여 그 고통을 참을 수가 없다. (…) 또 소갈증(消渴症·당뇨)이 있어 열서너 해가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역시 조금 나았다. 지난해 여름에 또 임질(淋疾)을 앓아 오래 정사를 보지 못하다가 가을 겨울에 이르러 조금 나았다."

 

지난봄 강무(講武)한 뒤에는 왼쪽 눈이 아파 안막(眼膜)을 가리는 데 이르고, 오른쪽 눈도 인해 어두워서 한 걸음 사이에서도 사람이 있는 것만 알겠으나 누구누구인지를 알지 못하겠으니, 지난봄에 강무한 것을 후회한다.

 

한 가지 병이 겨우 나으면 한 가지 병이 또 생기매 나의 쇠로(衰老)함이 심하다. (…) 이제는 몸이 쇠하고 병이 심하여 금년 가을과 내년 봄에는 친히 사냥하지 못할 듯하니, 세자로 하여금 숙위(宿衛) 군사를 나누어서 강무하게 하라.”

 

20대 후반에는 두통과 이질, 30대 중반에는 풍병과 종기에, 40대 중반에는 안질(요즘으로 치면 백내장)과 소갈증(당뇨), 그 뿐 아니라 수전증과 한쪽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는 기록도 있으니 이 정도면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 아니었나 싶어요. 어떻게 이런 몸으로, 각종 질환에 시달리면서 위대한 업적을 하나도 아니고 수없이 후대에 남겨줄 수 있었는지 다시 생각해도 너무 존경스럽고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프기도 하지요. 물론 왕관의 무게는 무겁고, 특히나 백성들을 위해 많은 고민을 했던 세종의 스트레스가 건강을 해친 요인 중에 하나였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 우리의 세종대왕님에게 건강한 식습관을 가질 수 있도록 조력해 주었다면, 그래서 조금 더 장수하셨다면 재임기간동안 훈민정음급의 국가의 운명을 바꿀 발명품이 한 두어 개 정도는 더 나왔을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엉뚱한 탄식을 해보게 됩니다.

 

오늘 나의 식단, 임금님 수라상이었나요? 소박한 평민의 밥상이었나요?

 

영조와 세종의 식단을 탐구하면서 오늘 저의 식단을 돌아보게 되더라구요. 온갖 산해진미로 가득했던 수라상이 과거에는 임금님만 누리는 것이었지만, 그 수라상에 올라가던 귀한 우유, 고기, 생선 같은 메뉴들을 우리들은 매일 매 끼니마다 먹고 있죠. 결국 ‘영양 과잉’의 문제이고, ‘입에 부드럽고 기름지고 달달한 음식'의 빈도를 낮추되 영조가 즐겼던 채식 위주의 ‘거친 음식’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지수의 러닝메이트]는 2주에 1회, 찾아옵니다!